서쪽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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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글 손수원 기자 사진 황문성 사진작가, 채미선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http://san.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14 

 

[한국의 알피니스트]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피츠로이에 오르다 - 월간산

채미선은 산 밑에 산다. 그녀를 만나려면 도봉산 입구 아웃도어 장비 매장으로 가면 된다.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산에서 등반을 하며 여성 토털 클라이머로서의 삶을 살았다. 당연히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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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선은 산 밑에 산다. 그녀를 만나려면 도봉산 입구 아웃도어 장비 매장으로 가면 된다.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산에서 등반을 하며 여성 토털 클라이머로서의 삶을 살았다. 당연히 태어난 곳도 산 밑일 것 같지만 사실 그녀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승권등산학교 다니며 등반 입문

전남 장흥군 대덕면 바닷가가 고향인 그녀는 고교시절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며 대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던 소녀였다. 그리고 1992년 서울로 올라오면서 산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살던 막내 고모가 등산을 자주 다니셨어요. 서울 와서 2월 즈음에 고모랑 처음으로 북한산에 갔었죠. 그게 서울에서 첫 등산 경험이었어요.”

서울의 산은 그녀에게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쉼터가 되어 주기도 했다. 3년 정도 워킹산행을 다니다 보니 암벽등반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저렇게 바위를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묻고 다니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리지등반하던 실력으로 암벽등반을 조금씩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인수봉 아미동길에서 머리를 올렸다. 그런데 기쁨보다는 실망이 더 컸다.

원주 간현암을 등반하고 있는 채미선.



“저는 생각보다 제가 등반을 되게 잘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너무 겁을 먹고 실력도 모자랐어요. 슬랩에서 벌벌 떨던 게 자꾸만 생각나서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어요. 한편으론 ‘도대체 이 세계가 뭐지?’라는 오기도 좀 생겼어요.”

1994년, 그녀는 마치 드라마 스토리처럼 자연스럽게 ‘운명’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좀더 산 가까이에서 살고 싶단 생각으로 수유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마침 집 근처에 ‘정승권등산학교’가 있었던 것이다.

“같이 등반하던 친구들이 ‘더 깊이 암벽등반을 배우고 싶으면 저기에 들어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가깝고 해서 들어갔어요. 그리고 거기에 있던 출중한 선배들 덕분에 저의 인생이 더욱 산 근처로 다가서게 되었죠.”

‘초짜’ 신입생에게 하늘같은 선배들이 늘어놓는 ‘무용담’들은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산에 다녔고, 어떤 등반을 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런 모습에 선배들은 이 ‘귀여운’ 후배를 더욱 아끼면서 등반기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했다.

“후에 해외원정을 가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너 산에 어떻게 오게 됐어?’ ‘어쩌다 등반하게 됐어?’ 이런 이야기들을 풀다보면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20대에 자기 자신에 대한 혼란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나의 진로, 나의 삶 같은 걸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산으로 갔는데, 그게 운명이 되어 제 인생에 너무 많은 것들을 얻은 것 같아요.”

좋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스포츠클라이밍뿐만 아니라 자연스럽에 암·빙벽 등반과 거벽, 고산 등반까지 섭렵했다.

“당시에는 그런 영역이 없었죠. 선배들은 당연히 편견 없이 이 모든 것을 할 줄 알았고, 심지어 모든 걸 잘했어요. 그런 선배들 밑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저는 참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1998년 제3회 토왕폭 빙벽대회에서 3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같은 대회에서 2위, 1999년과 2001·2002년에는 우승을 차지하고, 이어 중국에서 열린 국제 빙벽등반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클라이머로 떠올랐다. 이처럼 경기등반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 주던 그녀는 어느 날부터인가 대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제가 원래 경쟁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스포츠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죠. 좋은 성적을 내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이걸 해서 내가 과연 추구하는 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한테 맞지 않는 옷이었어요. 그래서 경기등반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어요.”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보다 대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행위가 더 즐거웠다. ‘경쟁’이라는 부담을 버리니 다시 산에 가는 게 행복해졌다.

2012년 피츠로이를 등정하고. 왼쪽부터 한미선, 이명희, 채미선.


여성원정대로 세계를 누비다


그녀는 2000년 첫 해외원정을 떠났다. 원래 후배이자 친구인 이명희와 해외원정을 가려했지만 채미선의 비자가 나오지 않아 무산되고 이듬해 김세준, 김점숙과 함께 요세미티 엘 캐피탄El Capitan 조디악Zodiac으로 향했다.

“처음 간 해외원정이니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근데 사실 많이 어리고 미숙했죠. 조디악 7피치까지 올라가서 물통이 터져버렸어요. 홀링해서 올리다 보니 바위에 부딪히면서 터진 거죠. 어쩔 수 있나요. 도로 내려가서 다시 준비해서 올랐죠. 원래 계획은 조디악을 빨리 하고 다른 코스를 등반하려고 했는데, 체류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조디악만 끝내고 와야 했죠.”

첫 해외원정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녀에게 더욱 큰 세상을 열어준 열쇠와 같았다. 2001년에는 김점숙, 오경아와 함께 요세미티 노즈Nose, 탠저린트립Tangerine Trip, 조디악을 등반하고, 2002년에는 알래스카 데날리(6,194m)를 올랐다. 그리고 2006년에는 김점숙, 김동애, 이명희와 함께 한국 여성원정대 최초로 그랑드 조라스Grandes Jorasses(4,208m) 북벽을 등정했다. 이 등반은 알프스 3대 북벽 중 기술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혼합거벽을 여성 클라이머들만의 힘으로 등반해 냈다는 점에서 산악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성들만 가서 더 힘들지 않았냐고 많이 물어봐요. 물론 힘들기는 하죠. 그건 혼성등반대도 마찬가지예요. 대신 정말 재미있게 등반하고 왔어요. 여성대원들은 모두가 일 번이 되고 마지막이 되어야 해요. 혼성등반대가 1번, 2번, 3번… 이렇게 나열되는 것과는 달라요. 서열보다는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등반을 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마음이 더 편했어요. 등반도 성공적으로 많이 하고 왔고요.”

2008년에는 김점숙, 김동애, 박정수와 함께 ‘클라이머의 로망’인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Nameless Tower(6,239m)로 향했다. 멤버도 좋고 날씨도 좋았으나 등반은 실패로 끝났다. 거벽의 기운에 압도되었고,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대원도 나왔다. 아쉬운 실패였으나 채미선은 이 실패를 “등반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실패였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후로도 여성원정대로서 원정을 이어갔다. 2011에는 이명희, 한미선, 서화영, 김영미와 함께 ‘2011 Woman Alps Fun Expedition’을 꾸려 유럽 알프스 산군을 등반하고 왔다. 2012년에는 이명희, 한미선과 함께 ‘한국산악회 파타고니아 원정대’를 꾸려 파타고니아 피츠로이Fitz Roy(3,405m)를 올랐다. 아시아 여성원정대로서는 처음이었다.

“2008년 트랑고타워에서 실패했었기에 피츠로이 등반을 성공할 수 있었어요. 1~2년 동안 실패의 원인을 계속 곱씹었으니까요. 원인을 찾았어요. 벽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어요. 바로 ‘나에 대한 두려움’이었죠. 실패할까봐 두려웠던 거죠. 그걸 이겨냈기에 피츠로이를 등정할 수 있었어요."


해외를 넘나들며 거벽과 고산을 오르던 그녀는 어느 순간 등반보다는 자전거를 열심히 타다가 요즘은 트레일러닝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자연은 무궁무진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을 게 너무 많아요.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행위의 형태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즐기고 싶어요. 등반이 될 수도, 자전거가 될 수도, 트레일러닝이나 또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겠죠.”

그녀는 “어떤 목표를 정하고 경쟁하며 이루기보다는 그냥 즐기면서 하는 게 좋다”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산과 만난 이후 아직까지도 변함없이 연애 중인 행복한 사람이었다.

여성산악인 채미선 등반 약력

1997~2002 정승권등산학교 강사

2000 미국 요세미티 조디악 등반

2000~03 설악산 빙벽대회 3연패

2001 미국 요세미티 노즈, 탠저린트립, 조디악 등반

2002 미국 알래스카 데날리(6,194m) 등반

2006 유럽 알프스 산군 등반(그랑드 조라스 외 다수)

2008 파키스탄 트랑고타워 네임리스 등반(이터널 프레임 루트)

2011 유럽 알프스 산군 등반(그랑카푸친 외 다수)

2012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3,405m) 등정(프랑코 아젠틴루 트)

2012 한국산악회 김정태상 수상

2013 파키스탄 트랑고타워 네임리스 등정(이터널 프레임 루트)

2014 대한산악연맹 고산등반상 수상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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